희망의 유폐와 인식의 위험
판도라의 항아리에서 재앙들이 빠져나오고 희망만 남았다는 이야기는 흔히 인간을 위한 위안으로 읽힌다. 그러나 재앙이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안에 남은 희망이 어떻게 인간을 위로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애초에 재앙을 담은 항아리 속에 희망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도 설명을 요구한다. 희망 역시 해악이었다면, 그것의 유폐는 인간에게 마지막 재앙이 도달하지 않은 사건으로 읽힐 수 있다.
이 해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희망의 부재가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 이유다. 희망까지 풀려났다면 인간이 살아남지 못했으리라는 가정을 받아들이면, 항아리 속 희망은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희망과 다른 작용을 해야 한다.
베르데니우스는 엘피스를 다가올 불행에 대한 기대로 해석하고, 그것이 갇힘으로써 인간이 추가적인 고통을 면했다고 보았다. 이때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이미 닥친 재앙뿐 아니라 아직 닥치지 않은 재앙을 의식하는 일이다. 불행이 오기 전의 시간까지 불행에 점유되는 것이다.
자프페는 「마지막 메시아」에서 인간의 의식이 생존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발달했다고 보았다. 인간은 현재의 고통뿐 아니라 자신의 죽음, 다른 존재들의 고통, 그것이 세대를 거쳐 반복된다는 사실까지 의식한다. 그는 이러한 인식의 부담이 삶을 유지하는 활동을 압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계속 살아가는 것은 그 부담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보다 의식의 범위를 제한하고, 일상과 목표에 자신을 붙들어 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관점에서 인식은 생존을 돕는 능력이면서 생존의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된다.
두 논의를 연결하면, 엘피스의 유폐는 인간이 감당해야 할 인식의 범위를 제한하는 장치로 읽힐 수 있다. 세계를 인식하는 능력이 삶을 유지하는 능력을 압도할 수 있다면, 인식의 한계 역시 인간이 계속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