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안다는 확신
인간의 사고가 물질적·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다면, 역사를 설명하는 이성도 그 조건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일부 흐름에서 해방의 전망은 역사의 필연적 결말로 제시되었고, 그 결말을 안다는 확신은 타인의 삶을 조직할 권한으로 이어졌다.
하이에크는 『감각적 질서』에서 인간 정신이 자신의 작동을 완전히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논증했다. 이를 사회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하면, 사회를 설명하는 사람 역시 자신이 설명하려는 질서의 일부라는 문제가 남는다. 역사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과 그 미래를 의도대로 조직하는 것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확신으로 메울 때, 이론의 불확실성은 타인이 감당해야 할 위험으로 바뀐다.
아도르노는 『부정변증법』에서 대상이 그것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남김없이 포착되지 않는다는 비동일성을 강조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역사를 계급과 발전 단계로 설명하더라도 개별 인간의 삶과 고통이 그 설명으로 모두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이론에 들어맞지 않는 경험을 오류나 잔재로 밀어낼 때, 설명에서 누락된 인간은 정치에서도 배제될 수 있다.
스탈린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에서 세계에 원리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없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만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의 발전 법칙 역시 인식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나 세계가 인식 가능하다는 주장과 자신의 이론이 그 법칙을 정확히 파악했다는 주장은 다르다. 정치권력이 그 간격을 지울 때, 자신의 판단에 대한 복종은 역사적 필연성에 대한 복종으로 요구된다.
역사의 방향을 알고 있다고 믿는 권력에게 반대는 다른 판단보다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보이기 쉽다. 현재의 고통은 미래의 해방을 위한 비용으로 계산되고, 그 비용을 치르는 사람들의 거부는 자신의 진정한 이익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처리된다. 살아 있는 인간의 경험보다 인간을 해방한다는 이론이 더 높은 권위를 얻는다.
이 구조에서는 실패도 확신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약속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방향의 오류보다 실행의 부족과 방해 세력이 지목된다. 피해가 커져도 이론을 수정하기보다 현실을 더 강하게 교정하려 한다. 사회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한계와 인간이 이론에 다 담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함께 부정된다.
비극은 잘못된 판단에 그치지 않는다. 그 판단을 수정하고 멈출 통로까지 닫는 데 있다. 해방될 미래의 인간을 대신해 말하는 권력이, 지금 고통받는 인간의 목소리를 무지와 저항으로 판정한다. 미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그 이름으로 요구되는 희생은 현재의 사람들에게 돌아간다.